정책·시장

주식은 제로섬일까, 폭락한 돈은 어디로 가나 (1부)

콩나물국밥 2026. 6. 23. 22:47

주식이 폭락하면 허공으로 사라진 것 같은 그 돈은 대체 어디로 갈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대부분은 증발한 게 아니라 누군가의 주머니로 자리를 옮긴 겁니다. 그리고 거래라는 행위만 떼어놓고 보면, 주식은 한쪽이 벌면 다른 쪽이 잃는 제로섬에 가깝습니다. 정말 그런지, 폭락장에서 돈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부터 따라가 보겠습니다.

투자 원리 시리즈 · 1부

이 글은 두 부로 나뉩니다. 1부는 "폭락한 돈은 어디로 가고 누가 벌고 잃는가", 2부는 "그렇게 옮겨다니기만 하는 게 아니라 새로 생기는 부는 대체 어디서 오는가"를 다룹니다.

1. '모두가 판다'는 상황은 성립하지 않는다

먼저 짚을 게 있습니다. "모두가 다 판다"는 상황은 사실 성립이 안 됩니다. 주식은 누군가 팔면 반드시 누군가 사줘야 거래가 체결되기 때문입니다. 파는 사람만 있고 사는 사람이 하나도 없으면 거래 자체가 일어나지 않고 호가만 계속 아래로 빠집니다.

그래서 현실에서 "다 판다"는 건 결국 "매도 압력이 매수세를 압도해서 가격이 무너진다", 다시 말해 누군가 받아주는 가격까지 떨어진다는 뜻입니다. 1주가 거래되려면 그 순간에도 반대편에서 사는 사람이 한 명은 있다는 얘기죠. 폭락은 매수자가 사라진 게 아니라, 매수자가 훨씬 낮은 가격에서만 손을 드는 상태입니다.

2. 시가총액은 어딘가 쌓인 현금이 아니다

두 번째 오해를 풀어야 합니다. 주가가 빠진다고 돈이 증발하는 게 아닙니다. 시가총액(주가 곱하기 발행주식수)은 그냥 계산된 숫자일 뿐, 어딘가에 쌓여 있는 현금 더미가 아니거든요. 어떤 회사 시총이 100조에서 50조가 됐다고 해서 누가 50조를 자루에 담아 들고 나간 게 아닙니다. 실제 현금은 매 거래가 체결되는 그 순간에만 손바뀜이 일어납니다.

아주 단순한 예로 보겠습니다. 같은 1주가 손에서 손으로 넘어가는 과정입니다.

거래 무슨 일이 손익
A가 매수 20만 원에 1주를 산다 기준점
A가 B에게 매도 공포에 18만 원에 판다 A는 2만 원 손실
B가 C에게 매도 B도 못 버티고 10만 원에 판다 B는 8만 원 손실
결과 주가는 10만 원, C가 보유 중 가격 절반

주가는 20만 원에서 10만 원으로 반토막 났습니다. 그런데 그 "사라진 것처럼 보이는 10만 원"은 사실 제일 비쌀 때 일찍 판 사람, 그러니까 맨 처음 A에게 20만 원을 받고 빠져나간 원래 보유자의 주머니로 흘러간 겁니다. 돈은 증발한 게 아니라 이동했을 뿐입니다. A와 B가 잃은 만큼을, 그 전에 비싸게 판 누군가가 가져갔습니다.

조금 더 들어가면 짚어둘 게 있습니다. 한 종목의 주주 전체가 동시에 현금화하는 것도 사실 불가능합니다. 시가총액이 100조라고 해서 그만큼의 현금이 시장에 대기하는 게 아니거든요. 모두가 한꺼번에 팔려고 들면 받아줄 현금이 부족해 가격이 더 빠지고, 장부에 찍힌 100조의 상당 부분은 그 가격에 한 주라도 더 팔 수 있을 때만 유효한 숫자입니다. 시가총액은 마지막 거래 가격에 전체 주식 수를 곱한 값이라, 전부 그 값에 팔린다는 보장이 없는 이론상의 평가액에 가깝습니다.

3. 그래서 누가 벌고 누가 잃나

이 손바뀜을 승자와 패자로 정리하면 이렇게 나뉩니다.

돈을 버는 쪽 돈을 잃는 쪽
고점 근처에서 먼저 판 사람. 비싸게 떠넘기고 나온, 가장 확실한 승자입니다. 고점에 사서 저점에 판 사람. 손실을 실제로 확정한 쪽입니다(예시의 A와 B).
공매도 세력. 빌려서 비싸게 팔고 싸게 되사 갚으니, 하락에 베팅해 법니다. 인버스 ETF나 풋옵션 보유자도 같은 편입니다. 물려서 버티는 보유자. 아직 안 팔았으니 장부상 평가손이지만, 자산 가치는 줄어든 상태입니다.
바닥에서 줍는 사람. 반등하면 이득이지만 더 빠지면 같이 물리는, 불확실한 쪽입니다. 빚으로 산 사람. 신용·미수·주식담보대출을 쓴 경우, 반대매매(강제 청산)를 당하면 가장 크게 깨집니다. 빌려서 샀으니 손실이 증폭됩니다.

공매도가 어떻게 하락에서 돈을 버는지 의아할 수 있습니다. 원리는 이렇습니다. 주식을 빌려서 지금 비쌀 때 팔아둡니다. 나중에 주가가 떨어지면 싸진 값에 되사서 빌린 주식을 갚습니다. 비싸게 팔고 싸게 산 차액이 이익이 되죠. 그래서 공매도 세력에게 폭락은 손실이 아니라 수익입니다. 인버스 ETF나 풋옵션을 든 사람도 방향만 다를 뿐 같은 편입니다. 다만 주가가 오르면 더 비싸게 되사야 해서 손실이 무한정 커질 수 있어, 공매도는 보통의 매수보다 위험한 게임입니다.

여기에 핵심 구분이 하나 있습니다. 거래하는 사람들끼리만 놓고 보면 현금 손익은 거의 제로섬입니다. 누가 싸게 팔아 본 손실은, 그만큼 일찍 비싸게 판 다른 사람의 이익이니까요. 반면 시가총액 감소(평가손)는 이 제로섬 계산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아직 안 판 주식의 장부 가격이 줄어든 것뿐이라, 돈을 주고받은 상대방이 없기 때문입니다.

4. 사실은 두 개의 게임이 돌아간다

"주식은 제로섬이다"와 "아니다"를 두고 사람들이 자주 다투는데, 제가 보기엔 둘 다 맞습니다. 무엇을 두고 말하느냐가 다를 뿐이죠. 같은 주식 위에서 성격이 다른 두 게임이 동시에 돌아갑니다.

게임 1. 사고팔기 (트레이딩) 게임 2. 소유하기 (인베스팅)
정해진 가격에 주식을 주고받는 행위. 제가 18만 원에 팔면 그 돈은 제 주머니에서 상대 주머니로 갑니다. 이후 오르면 산 쪽이, 내리면 판 쪽이 이득입니다. 한쪽의 플러스가 다른 쪽의 마이너스와 맞물리는 제로섬입니다. 주식은 종이쪼가리가 아니라 회사 지분입니다. 회사가 물건을 팔아 이익을 내고 배당·자사주·재투자로 돌려줍니다. 이건 누구에게서 뺏은 게 아니라 새로 생긴 가치라, 상대의 손실이 필요 없는 플러스섬입니다.

그래서 시간 단위를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답이 갈립니다. 하루짜리 매매처럼 짧게 보면 거의 제로섬입니다. 누가 벌면 누가 잃죠. 수수료와 세금까지 떼면 오히려 마이너스섬이고요. 반대로 수십 년 보유처럼 길게 보면 플러스섬입니다. 모든 장기 주주가 함께 이득을 볼 수 있습니다. 제가 번다고 당신이 잃을 필요가 없습니다. 파이 자체가 같이 커지니까요.

단타 트레이더 다수가 길게 보면 잃는 게 이 마이너스섬 탓입니다. 거래할 때마다 증권사 수수료와 거래세가 빠져나가니, 참가자 전체 손익의 합은 시간이 갈수록 0보다 작아집니다. 손님들끼리 포커를 치는데 판마다 카지노가 자릿세를 떼어가는 것과 비슷하죠.

앞 장에서 "폭락장의 현금 손익은 거의 제로섬"이라고 한 게 바로 게임 1 이야기였습니다. 폭락하는 짧은 구간에는 회사가 새로 만드는 가치는 거의 무시되고, 주식을 누가 누구에게 떠넘기느냐 하는 손바뀜만 도드라지거든요.

5. 사과나무 한 그루로 보면

이 두 게임을 사과나무 한 그루로 그려보면 단번에 이해됩니다.

나무 자체는 해마다 사과를 새로 맺습니다. 이 사과(기업 이익, 배당)는 누구에게서 뺏은 게 아니라 새로 생긴 것입니다. 이게 플러스섬, 게임 2입니다. 그런데 그 나무의 소유권 증서(주식)를 사람들끼리 사고파는 행위는, 오늘 제가 당신에게 비싸게 팔면 제가 이득이고 당신이 손해입니다. 이 손바뀜은 제로섬, 게임 1입니다.

미국 S&P 500이 100년 넘게 우상향해 온 건 트레이더들이 서로를 잘 속여서가 아니라, 그 안의 회사들이 실제로 사과를 맺어왔기 때문입니다. 장기적으로 시장 전체가 오르는 근본 이유가 이 나무에 있습니다. 단타는 사과를 거의 보지 않고 증서만 주고받는 일이고요.

게다가 이 사과는 떨어지기만 하는 게 아닙니다. 받은 배당으로 같은 나무의 지분을 더 사두면 이듬해엔 더 많은 사과가 열립니다. 시간이 복리로 일하는 거죠. 단기 트레이더는 이 사과를 거의 보지 못한 채 증서값의 등락만 좇지만, 장기 소유자는 사과가 쌓이고 그 사과가 또 사과를 낳는 과정을 누립니다. 같은 주식을 들고도 전혀 다른 게임을 하는 셈입니다.

한 가지 덧붙이면, 제로섬이라는 말이 곧 도박(순수한 운빨)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게임 1이 제로섬이어도, 정보와 분석과 인내심이 더 나은 사람이 평균적으로 이기는 쪽에 설 확률이 높습니다. 누가 이기고 지는지가 순전히 우연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6. 그럼 회사 본체는 어떻게 되나

마지막으로 자주 나오는 질문 하나. 주가가 폭락하면 그 회사 통장에서도 돈이 빠질까요. 직접적으로는 아닙니다. 회사는 상장이나 증자 때 이미 돈을 받았고, 그 뒤 매일의 거래는 투자자끼리 주식을 주고받는 일이라 회사 금고와는 무관합니다.

다만 간접 타격은 분명히 있습니다. 나중에 유상증자로 자금을 조달하기가 불리해지고, 임직원에게 준 스톡옵션이나 주식 보상의 가치가 떨어지며, 주가에 연동된 경영진 보상이 줄고, 다른 회사를 인수할 때 자기 주식을 화폐처럼 쓰기가 어려워집니다. 그리고 가치가 진짜로 소멸하는 유일한 경우는 회사가 망해서 주식이 휴지가 될 때입니다. 그때는 이동이 아니라 소멸이고, 주주는 전부 잃습니다. 반대로 단순 수급으로 빠진 거라면 가치는 다른 주머니로 옮겨갔을 뿐이고, 펀더멘털이 멀쩡하면 시간이 지나 되돌아오기도 합니다.

반대로 주가가 오를 때는 이 모든 게 거꾸로 유리하게 작동합니다. 싼 비용에 자금을 조달하고, 주식 보상으로 인재를 붙들고, 다른 회사를 인수할 때 자기 주식을 두둑한 화폐처럼 쓸 수 있죠. 그래서 경영진이 주가에 민감한 건 단순한 자존심이 아니라 회사가 쓸 실탄과 직결된 문제입니다. 주가는 회사 통장을 직접 채우지도 비우지도 않지만, 회사가 미래에 돈을 구하는 조건을 바꿉니다.

1부 정리, 그리고 2부에서 할 이야기

폭락해도 돈은 대개 증발하지 않고 이동합니다. 거래라는 게임만 보면 주식은 제로섬이고, 회사를 소유하는 게임으로 보면 플러스섬입니다. 짧게 보면 뺏고 뺏기고, 길게 보면 같이 큽니다.

그런데 여기서 풀리지 않는 게 하나 남습니다. 소유가 플러스섬이라면, 그 '새로 생기는 가치'는 대체 어디서 오는 걸까요. 누구도 잃지 않고 부가 생긴다는 게 정말 가능한가. 게다가 부가 끝없이 커진다면 자원이 유한한 지구는 어떻게 설명하며, 아무것도 만들어내지 않는 금과 비트코인은 왜 값이 매겨질까요. 2부에서 빵집과 맬서스, 그리고 금·비트코인으로 이어가겠습니다.

이 글은 시장의 작동 원리를 설명한 것으로, 특정 종목의 매수·매도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투자 판단과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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